2025년 08월 22일
감당 못할 대형 젤리
8월 22일
.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를 읽었다. 월별로 한 명의 작가가 매일 쓴 글들을 모은 기획이다. 흩어지면 그만일 수 있는 하루라는 단위를 소중하게 한 타래 타래 엮어서 볏짚단처럼 묶어두었다. 2월,3월,4월을 빌려왔고, 4월부터 읽었다. 이훤 작가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던 4월의 시간을 선물처럼 건네받았다.
. 매일 무엇이라도 쓰는 게 좋겠다. 그것이 시든, 일기든, 소설이든. 아무 글도 남기지 않고 흘러간 한 달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 첫 단막극 드라마 하나를 마무리한 지난 주말엔, 내 덩치로는 감당을 못할 만큼 큰 젤리를 들고 걸어다니는 기분이었다. 온힘 다해 치맛자락에 싸안았지만, 결국에는 뭉글뭉글 튀어나오고, 제멋대로 흘러버리고. 세 시간 정도는 그렇게 감당 못할 고양감을 안고 돌아다녔다. 산책로를 걸어 돌아오는데, 땡볕에 온몸이 뜨거운데 자꾸 눈물도 났다.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설명할 수 있을 그 어느날까지 이런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런 것인가, 추측해보자면 상실감이기도, 행복감이기도. 그날 이후로 며칠은 반동처럼 찾아온 우울을 견뎠다.
. 어제는 밤 열시쯤 미뤄둔 빨래를 개면서 간간이 클로드 코드의 질문에 엔터를 쳐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직접 하는 건 시간이 많이 드니, 클로드가 해주면 좋겠는데, 클로드가 일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밖에 나와 빨래를 갰다. 세탁기가 생활의 혁명이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빨래 개는 기계는 왜 안 만들었냐며 대꾸했다. 눈부신 기술의 발달로 결국 나는 빨래갤 시간을 확보했다는 게 재밌고 웃음이 난다.
. 드라마 대본 포맷을 맞춰주고, 촬영 계획표를 짜주는 분석기를 만들었다. 구글 애널리틱스 추적기도 달고, 기본 SEO도 하고, 공개는 안 했지만 AI 분석 모드도 기본적으로 연결해두었다. 전체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몇 개의 씬을 분석하고 기준을 줘서 로컬에서 돌아가도록 하라는 - D의 제안대로 설계해봤다. 그렇게 하면 token을 아껴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는 남은 평생 이 token을 지불하며 살겠구나 싶고, 이번주에 처음 클로드 MAX를 결제하고야 말았다. 단순히 말하는 장난감이 아니라 열을 뿜는 데이터센터를 돌리면서 이런 기술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너무 빨리 가지 않는 일의 쓸모를 자주 생각하면서도 때로 호기심이 앞선다. 내가 하는 쓸데 없는 실험들에 이 좋은 기술을 마음껏 가져다 써보고 싶은 욕심.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게 - 어떤 부분에서의 해방과 고립을 동시에 가져오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일하고, 부딪치면서 무언가 이뤄가는 건 소중하다. 소중하다는 단어가 마음에 팡 떠오르는 동시에 땅에는 그림자가 남아 있다. 그 그림자는 말하자면, 어딘가에 두고 온 이별, 영원히 그 한때에 남아있을 마음 같은 것. 서로 그립고 좋아하는 정도면 그래도 다행인 것일까? 최악의 이별을 겪은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치. 이별은 서로 이 이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 묻기 어려워지는 게 이별인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