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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8월 23일

2교시부터 8교시

8월 23일

댄서 리정이 ‘자신은 퍼포머이기 때문에 자기확신을 연습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작가는 어떻게 자기 의심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을 더해 어떻게 자기 작품을 성장시킬 수 있는가?


이번주는 드라마 합평을 받는다. 서른 다섯명의 눈으로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평가 받는 일은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단계. 이 기회를 채점표 받아드는 학생처럼 대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들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얼마나 경청하고, 다른 판단을 받아들일지, 얼마나 내 판단을 재고해야할지, 이야기의 세계에서도 수많은 의사결정이 있구나 싶다. 태도를 결정해두자, 생각한 뒤 소결론을 내렸다. 나는 합평을, 무엇보다 다른 작가와 나의 판단의 차이, 내 고유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이훤 작가의 에세이에서 자꾸 회귀하는 교실에서의 어떤 시간이 나온다. 나에게도 나를 형성한 핵심 기억들, 그 중에서도 아프고 망설이고 갈피를 못 잡았던 시간들이 있다. 내가 자주 회귀하는 시공간은 현재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때의 그 자아를, 그 느낌을 자주 불러와서 현재의 나를 다시 구성한다.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재수생 자아, 감정을 실험하고자 했던 스무살 초반의 자아를 비롯해… 내가 자주 회귀하는 시간과 자아가 있다. 그 중에 이번에 다시 떠올린 건 고등학교 자퇴의 계기가 된 그 사건이 일어난 날, 2교시부터 8교시까지의 시간이다.

그날 1교시, 가정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와서 애들 교복을 단속하고, 교탁 앞에 줄 세워 조신하게 다니라며 주의를 줬다. 가슴이 부각된다며 야하게 다니지 말라면서 교복을 열었다. 올바르게 단추를 새로 달 자리에 볼펜으로 점을 찍어 표시해주었다. 나는 줄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그 모욕감의 정체도 알지 못하고, 단지 얼굴이 뜨겁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두려웠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리에 매달린 불쾌함을 질질 끌고 내 자리로 돌아와 걸상에 앉았고 야하다며 지적받은 친구는 쉬는 시간에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나는 2교시부터 8교시까지 자리에 앉아 한순간도 졸지 않고, 수업도 듣지 않고 그 생각을 했다. 이 마음은 뭔지, 이 불쾌감은 정당한지, 정당함은 어디서 오는지, 상대의 의도는 불순한지, 순수한지. 불쾌함의 정치적 정당성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런 정당성에 대한 집착, 여러 맥락을 파악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만 하는 성미. 일곱시간을 꼬박 그 생각을 했다.

때로 그 2교시에서 8교시의 시간을 반복하는 나는, 불필요하게 많은 판단의 근거를 필요로 하고, 스스로의 편이기보다는 판단자이고자 한다. 그렇게 판단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무실로, 개운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그 애는 왜 8교시까지의 시간을 견뎠을까. 점심시간 쯤 올라갔어도 좋았으련만. 좀 덜 참고, 자기의심을 덜하고, 다른 사람의 의도까지 고려하려 하지 않고 바로 부딪쳐보아도 좋았으련만.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긴 시간 판단을 유예하고 살피는 조심성 같은 게 때로 나를 책걸상에 붙박여놓는 시간을 만든다. 그 시간 동안 혼자만의 고치를 만들어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18살 여자애의 마음을 다시 느낀다, 생각한다. 그 비슷한 괴로움의 시간이 자주 돌아오고, 그 책걸상 앞에 나는 나를 자주 앉힌다.

그런 특징이 상상 속 현실을 짓고 캐릭터를 대할 때에도 드러난다. 악역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를 끝까지 유예하려 하고, 딜레마를 제시한 뒤 끝까지 속시원한 답을 내지 않는다.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거나, 기승전결에서 마지막 부분의 서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그 피드백을 두고 들여다보면서, 거꾸로 이것이 나의 성향이고, 내가 만들어진 방식 중 하나구나 깨달았다.

이야기꾼의 세계에도 분명 탁월함과 그렇지 않음의 경계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지점에서 이야기에 대한 선택, 철학은 표준이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기꺼이 ‘표준 없음’의 세계로 들어서서 자기다움을 찾는 일. 그게 결국 볼 만한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과제인 것이다.

+D는 ‘평가’는 결국 특정 세계에 대한 적응성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말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도 맞는 자리에서 발휘할 때에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끝.